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푸드 가이드 | 2017년 09호
암 치료에 좋은 차 한잔 이야기
“혹시 시간 되시면 차 한 잔 하실래요?” 이건 좀 구태의연한 방 법이긴 하지만 고전적인 작업수단 중 하나다. “차나 한잔 마시고 가게-喫茶去-” - 이건 중국의 유명한 선승인 조주 스님의 선문답 중의 하나이다.(후략)
글_이대목동병원 정구용 교수 기자 | 2017-11-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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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혹시 시간 되시면 차 한 잔 하실래요?”

이건 좀 구태의연한 방법이긴 하지만 고전적인 작업수단 중 하나다. “차나 한잔 마시고 가게-喫茶去-” - 이건 중국의 유명한 선승인 조주 스님의 선문답 중의 하나이다. 


 이성의 마음을 낚던, 중생의 불심을 낚던, 낚시 미끼로 유용하 게 쓰이던 “차 한 잔” 이라면 무지 무지 매혹적인 그 무엇이 있을 법 하다. 하지만 茶飯事(다반사), 茶食(다식), 茶房(다방), 茶禮(차례) 등으로 우리의 언어에 흔적을 남긴 차(茶 : 다 혹은 차로 음독한다)는 요즘엔 커피에 밀려서 일상 茶飯事(다반사) 가 일상 嘉排事(가배사)가 되었고, 고유명사였던 차가 일반명사화 되어서 대추차 쌍화차 오미자차 등으로 모든 음료수의 어미가 되어 버렸다. 


 이렇게 차 한 잔 마시는 게 일상사에서 멀어져 특별사가 된 데에는 숨 가쁘게 돌아가는 현대문명의 진화에 발맞추어 공진화 하지 못한데 있다. 차를 즐긴다는 것은 커피처럼 바쁜 일상과 앙상블을 이루기가 힘든 게 사실이다. 하지만 이렇게 벌어진 간격을 굳이 좁히려 하지 않고, 고풍스런 차 마시기를 고집하는 사람들이 있다. 차 한 잔 우려 놓고 바쁜 일상과 함께 어울리는 것도 좋지만, 아무래도 차는 여유로운 마음과 함께 마시는 게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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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임어당은 술에 대한 그의 지론에서 혼자 마시면 멋있고 둘이 마시면 정답고 셋이 마시면 즐겁다고 했는데, 이는 차에 있어서도 마찬가지다. 술이나 차나 내 일상에서 벗어나야 마신다고 할 수 있다. 술이나 차나 다 같이 마음을 우려낸다. 술은 우리 마음에서 어지러운 것도 마구 우려내서 가끔 사람을 난처하게 만드는 수도 있으나 찻 자리에서는 거의 그런 일이 없다. 향기로운 차를 마시면서 육두문자 쓰는 건 아무래도 안 어울린다. 차를 마시면서 우려지는 마음들을 차향과 함께 방안에 가득하게 만들어 보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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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향적 추억이 자연과학으로 설명하기 난감하듯이 차에 기호 가 생기는 것도 과학적으로 분석해서 이렇다 저렇다 애기하기 곤란한 점이 있다.  오감으로 차를 즐긴다고 하는데 즉 청각, 시각, 미각, 촉각, 후각이다. 귀로 물 끓는 소리(옛 다인은 화로에서 쉐~하고 물 끓는 소리를 여름날 소나무 숲에 바람 지나 가는 소리로 표현했다)를 즐기고, 눈으로 차의 탕색과 다기의 완상, 코로 차의 향기를 즐기고 혀로 차의 맛을 음미하면서 손으로 찻잔의 감촉을 즐긴다. 하지만 이런 관능의 영역만 분석 하고 있다보면 너무 이지적으로 보편적인 차 품평에 길들여짐으로써 차 상인들에게 자기의 주체성을 모두 내주게 되어버리는 수가 있다.

차는 감각 이상의 문화적인 영역이다. 모든 기호식품이 그렇듯이 요즘 말로 하면 “필이 꽂히는 경험”이란 게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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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게 필이 꽂히는 경험은 금연의 결심과 함께 시작한 2000년 정월에 시작되었다. 금연을 시작하고 처음 한 달여를 매일 사탕 두 봉지씩 소비하면서 차츰 우울해지기 시작했다. 失煙(실 연)이 失戀(실연)처럼 느껴졌다. 아마 1월이 다 가던 무렵의 눈 내린 토요일 오후가 아니었나 싶다. 쓸쓸해진 마음에 인사동 거리를 걸어 보고 싶은 생각이 났다. 인사동 네거리 못 미쳐서 조그마한 차 가게가 눈에 띄어 들어갔는데, 젊은 여자 주인이 두 명의 손님과 함께 차를 마시고 있다가 자리를 권하고 차를 우려 주었다. 대만에서 생산되는 고산 우롱차를 당성이라는 다기 회사의 찻잔에 따라 주었다. 바깥 면은 반사가 되지 않는 불투명의 까만색이었고 안쪽은 유백색의 따스하고 달콤한 느낌 을 주는 다종(종 모양의 찻잔)이었다.

추운데 있다가 바로 들어 와서 아직 콧잔등에 찬 기운이 어려 있는데, 차향이 코 안쪽으로 뭉클 지나가는 게 느껴졌다. 팽주(차를 우리는 사람을 이렇 게 부른다)가 일종의 밀향이라고 설명을 해 주었다. 차를 마시고 난 다음 빈 잔을 꼬옥 쥐면 따스하고 부드러운 느낌이 손바닥에 전해지고 빈 잔에서는 계속해서 잔향이 그윽했다. 그 잔이 식어가면서 잔에 남아있는 향기가 달콤한 부드러움에서 조금씩 청아하게 바뀌어 가는 걸 느낄 수 있었다.

이 한 잔의 경험이면 충분했다. 그날 집에 들어가면서 그 향기의 추억을 계속 음미 할 수 있었다. 아쉽다 싶으면 코를 한번 문질러 본다. 그러면 향기가 그 어디에 숨어 있었는지(나는 당시 콧 털 속에 묻어 있었던 게 아닌 가 했다) 다시 은은하게 코 안쪽 깊은 곳 에서 느껴지곤 했던 것이다. 언젠가 읽었던 글 중에서 “잘 여물은 봉선화 꽃씨주머니처럼 톡 건드리면 찰나에 톡 터지는 自 覺(자각)의 꼬투리”라고 표현 했던 그런 인연의 순간이 찾아 온 것이다. 이런 경험을 한 이후 나는 기호식품에 좋은 인연을 맺으려면 일단은 가능한 한 최상의 상품을 경험해 보란 말을 하
곤 한다. 화살 끝이 뾰족해야 과녁에 꽂히듯이 최상의 상품일 수록 그렇게 내 감성의 과녁에 뾰족한 화살이 되어줄 가능성이 높다고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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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후로는 차라면 우롱차 말고는 눈에 띄지도 않았다. 처음엔 좋은 우롱차를 가격 불문하고 구하다가 차츰 좋은 우롱차를 싸게 구입하는 쪽으로 진화했다. 그 다음에는 짐작하듯이 다른 종류의 차, 즉 녹차, 포종차, 대홍포 등 암차류에서 보이차 홍차 등으로 저변이 확대 되다가 차 우리는 다기에서 찻잔까지 관심의 폭이 넓어지기에 이른다. 뾰족한 끝에서 시작하여 점차 저변이 넓어져 가게 되는 것이다.
 그 다음 단계는 생산과 유통에 대해서도 관심이 가기 시작하는 지경에 이른다. 집사람의 성화에 못 이겨 억지로 백화점 같은 곳을 따라가면서 도저히 이해 못 했던 일이 바로 상품을 가지고 실랑이 하면서 아까운 시간을 지나치게 많이 소비 하는 것이었다(비용효율이 떨어지는 일이 아닌가?).

그런데 내가 차에 관심을 가지게 되면서 이런 일에 대해 이해를 하게 되었는데, 그것은 바로 이 상품에 대한 주관이 있다는 강한 자부심의 발로라는 것을 알게 된 것이다. 나는 이 상품에 대해서 잘 알고 있고 가격도 내가 판단 할 수 있고 내 기호와의 합치 여부도 내 나름 의 주관에 의해 독립적으로 판단한다는 표시인 것이다. 점잖은 체면에 발설은 못해도 속으로는 “까불지 마 이눔아 나 다 안다” 식의 내면적 잘난 척이 시작된다.

기호품을 소비하면서 두 가지 문제가 생기는데 하나는 물론 도저히 그 기호품에 대한 감각이 생겨나지 않는 것이다. 이런 경우에는 이 기호품의 유통가격에 자기의 기호를 떠맡기게 된다. 비싸면 좋게 느껴지고 싸면 그저 그렇게 느껴진다. 혹은 사치 재(베블런재)처럼 과시용으로 소비하게 된다.

두 번째는 충성도가 너무 높아서 한 번 맛을 들인 것 말고는 다 른 것은 모두 부정하는 것이다. 마음을 꼭꼭 닫아거는 고집스러움은 그 기호품의 풍부한 세계를 경험하는 기회를 박탈하고 다른 동호인과 말싸움만 하게 만든다. 차를 마시는 즐거움은 오감을 만족시키는 관능적 즐거움을 넘어 차를 우려내는 손 맛과 분위기, 우려진 마음들의 응축과 추억이 우리의 뇌 속에 흔적을 남기는 것이기에 내 마음이든 상대 방 마음이든 그 기호를 존중해 주고 이해하려고 하는 것이 필요하다.

요즘 한창 유행하는 中庸(중용)의 묘가 차 한 잔에도 있다고 생각한다. 마음을 흡족하고 맑게 하되 거기에 집착하지 않는 것 정도라고 할까. 옛날 중국에 천하를 호령하던 용감무쌍한 장군이 있었다. 그 장군이 차를 즐기며 아끼던 찻잔이 있어서, 늘 그 찻잔을 가지고 자랑하면서 감상하곤 했다. 어느 날 그 찻잔을 가지고 감상하다가 미끈하고 찻잔을 떨어뜨릴 번 한 순간 다행히 놓치지 않고 다시 잡을 수 있었다. 그 순간 그렇게 용감하던 장군은 등골이 서늘하게 놀랐는데, 스스로 생각하길 “내가 그 많은 사람이 죽어나가는 전장에서도 눈 하 나 깜작 하지 않았는데 지금 이 조그만 찻잔하나에 등골이 서늘 해 진 것은 내가 과도하게 집착한 결과다.” 그런 생각이 든 순 간  장군은 그 찻잔을 집어 던져 깨 버렸다고 한다.  

차를 마시는 즐거움 중에 하나는 소중한 것을 모아 놓는 것이 아니라 소중한 것을 만들어 가는 것에 있다. 대부분의 차를 즐기는 사람들이 다기들을 선택할 때 기계가공품보다는 수공품을 찾는 이유가 거기에 있다. 수공품이 품질이 우수하다기보다는 천편일률적이지 않은 자기만의 모습이 있기에 그 많은 모습 중에서 내가 좋아 할 수 있는 일탈이나 파격을 찾아 낼 수 있고 거기에서 어떤 인연의 소중함을 느낄 수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런 인연과 더불어 오랜 시간 손 때가 묻고 차 때가 묻어 세월의 더께가 쌓이면서 소중해지는 것이다.

가끔 누군가 가 와서 찻잔에 금이 가게 하거나 이빨이 빠지게 만들어 준다면 그것도 인연이 될 것이다. 그래서 누군가는 말하길 다기는 도공이 반을 만들고 다인이 반을 완성한다고 했다.

나는 도공 이 완벽한 다기를 만들기 위해 자신의 작품의 반을 망치로 두들겨 깨 버리는 것에 찬성하지 않는다. 실용용기의 미학적 완성도를 작가의 의도를 넘어선 우연성과 자연성에 두는 사람들도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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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차나무는 학명으로 cameliasis sinensis 라고 하는데 동백 나무와 같은 속에 속한다. 이 차나무에서 딴 잎을 여러 가지 방법으로 가공하여 다양한 종류의 차가 만들어진다. 많은 사람들 이 녹차와 홍차가 같은 차나무에서 만들어진다는 것을 모르고 있다. 물론 차나무에도 사과나무처럼 다양한 종이 있어서 각기 종에 따라 유용한 제다법이 있지만, 근본적으론 같은 차나무인 것이다. 찻잎을 따서 그 잎에 있는 구성성분에 다양한 변화를 주는 것인데 지금까지 알려진 주요성분으로는 폴리페놀류와 테아닌을 포함한 아미노산류, 카페인, 테오필린, 펙틴 성분, 비타민 등 미네랄 성분이 있다. 카테킨을 포함한 폴레페놀류는 항산화 작용 등 인체에 유리한 기능이 있으면서 쓰고 떫은맛을 내기 때문에 차의 품질에 큰 영향을 주는 성분중의 하나이다. 테아닌 등의 아미노산 성분은 머리를 맑게 하고 감칠맛을 느끼게 하는 성분이며 카페인은 각성효과가 있다. 차 잎에 있는 이 런 성분들이 산화, 가수분해 이성질화 등의 화학 변화를 거쳐 다양한 향과 맛과 색을 드러내게 된다.

제다를 하는 물리적 과정에는 탄방, 위조, 살청, 주청, 유념, 발효, 건조, 악퇴, 민황등이 있는데, 이러한 과정의 어떤 것을 거치는냐에 따라 녹차류, 백차류, 황차류, 청차류, 홍차류, 흑 차류로 나눈다. 찻잎에 다양한 물리 화학적 변화를 주어져서 차가 완성 되는 것을 넓은 의미에서 발효된다고 말한다. 녹차 는 발효가 일어나지 않은 상태에서 열을 가해 더 이상 변화가 생기지 않게 한 것이고 청차는 20% 에서 60% 정도로 발효가 진행되게 한 다음 열을 가해 고정 시킨 차 종류이다. 이에 반해 홍차는 90%이상 완전 발효된 차이다. 황차류와 흑차류는 발효가 진행되지 않은 상태에서 즉 거의 녹차상태에서 물리적 혹은 미생물 작용을 유발시켜서 변화를 유발시킨 차이다.

이렇게 다양한 차 종류와 또 다양한 차 우리는 방법이 어우러져 차 마시는 풍취를 다양하게 즐길 수 있는 것이다.

여섯 가지 차 종류 중에서 녹차부터 홍차까지는 향과 맛과 색이 중요하다. 동양 삼국 중에서 중국 사람은 향을 즐기고 일본 사 람은 색을 즐기며 한국 사람은 맛을 즐긴다는 말도 있지만, 이 세 가지 관능의 즐거움은 사실 함께 어울려져야지 하나라도 빠 지면 섭섭할 수  밖에 없고 단지 어느 것이 더 강하게 자기주장 을 하느냐에 따라 조금씩 다른 느낌을 전해 주는 것이다.

녹차에서 홍차까지의 차에서 공통적인 것은 비싸고 고급스런 차를 구하게 되면 빨리 차를 즐기는 사람을 모아서 즐거움을 함께 나누는 것이다. 미인박명이라고 향과 맛이 고급인 차는 조금만 그 맛과 향이 약해져도 마음에 불만이 쌓이게 되는데, 어지간히 꼼꼼하지 않으면 이런 고급차의 좋은 향과 맛을 오래 보존하기가 힘들기 때문이다. 이에 반해 보이차를 포함한 흑차류 는 대부분 시간이 지나가면서 맛이 두터워지고 편해지기 때문에 오래 보관하고 즐기기에 좋다.

또한 세월에 따라 변화해 가는 모습을 즐기는 것도 하나의 취향이 될 수 있다. 시간이 흘러 처음엔 못 먹을 것 같던 차가 풍부한 맛을 내기 시작해서 돌아온 탕자처럼 기쁠 때도 있고 영 변화가 없어서 안타까울 때도 있다. 그렇게 차가 변하는 모습을 보면서 어쩌면 나 자신도 차 인양 시간이 흘러감에 따라 발효되는 모습을 기대해 보기도 한다.

나이가 들면서 향기와 맛이 두터워지길 바라는 것은 사람이나 차나 마찬가지가 아닐까?  유배지였던 강진을 떠나 고향으로 돌아온 다산 정약용 선생은 멀리 있는 강진의 제자들에게 차를 보내 달라는 乞茗訴(걸명소)를 보냈는데, 차를 애절하게 구걸 하는 그 글에서 다산의 순박한 인간적인 향기와 멋을 느낄 수 있다. 목민심서 같은 준엄한 글을 쓰는 다산의 이면에 있는 정이 넘치는 인품은 바로 강진의 차로부터 나온 게 아닌가 생각하면서, 김현승의 시를 걸어놓고 차 한 잔을 권합니다.  차 한 잔 하시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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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암매거진 2017년 0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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